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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 이미지
2017년 11월 18일 22시 14분  조회:2272  추천:0  작성자: 죽림
     
 

현대시와 이미지 /박진환

1. 이미지의 개념 설정

현대시를 한마디로 집약하라고 한다면 서슴없이 이미지라 할 것이다.
그만큼 현대시는 이미지를 표현 본질로 하고 있고 또 이미지의 결 구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이미지스트였던 파운드는 수많은 시를 쓴 것보다 일생 동안 단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좋다고 할 정도로 이미지를 중시했다.

이미지에 대한 설명은 여러 가지로 제세 되고 있다. 흔한 말로 이미지를 심상이라고 한다.
이는 어떤 인상이 마음에 새겨져 있다는 뜻인데, 흔히 사물로 그린 그림이라고도 하고 말로 만들어진 그림 혹은 언어의 회화라고도 한다. 
이런 단편적인 정의를 제시 했다고 해서 이미지의 개념이 설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풀이했을 때 이미지에 대한 이해를 도울 것으로 본다.

이미지는 일단 광의의 개념과 협의의 개념으로 육체적 지각작용에서 이룩된 감각적 현상이 마음속에 재생된 것으로서 이를테면 장미 한 송이를 보았을 때 마음속에 그 장미꽃이 사상(寫像)된다.
그것은 인간이 경험하는 주관적 감각이 그 장미꽃을 표면적 복사 내지 모사(模寫), 인화시키기 때문이다.

시란 바로 이러한 이미지를 언어로 형상화한 것인데, 이때 감각적 이미지와 동등한 지각적 이미지가 상호 연관되어 연결 통합되게 마련이다.
이를 이미지와 총체적 결합인 이미저리라고 한다. 이때 필연적으로 언어는 이미지를 제작해 내는 이미지 제조기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러한 광의의 개념은 다시 협의적 세분화에 의해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데, 이때 세 측면을 제시할 수 있다.
하나는 훈련 심상이라고 하는 정신적 이미저리이고,
두 번째는 비유적 이미저리,
세 번째는 상징적 이미저리이다. 이를 구체화 했을 때 이미지에 대한 개념 및 정의는 설정 될 것이다. ㅡ 계속

...

첫째, 정신적 이미저리부터 설정해 보자.
정신적 이미저리는 독자가 시를 읽었을 때 일으키는 공감각적 효용을 중심으로 성립되는 이미지의 해석이다.
독자가 시를 읽었을 때 그 시 속에서 내용에 따른 정서의 전이나 체험의 복합성에 딸린 메인 이미지는 무엇이며, 이 메인 이미지를 뒷밭침하고 있는 이미지들은 무엇이며, 이것들이 어떻게 결합되어 이미저리를 형성하는가를 계산해 볼 수 있는 것이 시각적 이미지다.

두 번째의 비유적 이미저리는 어떤 대상이나 사물을 드러내고자 할 때 이를 보다 더 잘 나타내기 위해서 그와 유사한 사물의 본질, 양태, 속성들을 연합, 결합, 통합함으로써 비유를 비어 본래의 것을 이미저리로 창조해 내는 것을 말한다.

셋째로 상징적 이미저리는 첫 번째 이미저리처럼 감각적 체험을 통해 정신 안에 인화된 상을 시 속에 문자로 재생, 나열 하거나 두 번째의 경우처럼 어떤 주제를 사물을 빌어 비유하거나 아니면 이 두 경우를 복합적으로 사용, 심리적 연상의 힘을 빌어 여러 2차적 상징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시인은 정신적, 감각적 이미지를 문자화하는 능력 뿐 아니라 자신의 관심, 취향, 기질, 여러 가지 기준, 환상 등을 이미저리로 나타나게 해 주며 동시에 시 속의 이미지들을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해 준다. 
따라서 이미지의 패턴들이 시의 어조를 만들기 위하여도 발생되고 또 문맥의 구조나 상징의 방법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저리는 서로 독립된 별개의 것이 아니고 엇갈려 있으면서도 연관되고, 연관되면서도 분화되는 변증법 적인 과정을 거쳐 총체적으로 결합된다.
이는 시의 전체적 이미저리를 성립시킨다고 보아야 온당하다.

이상의 설명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지 이미지에 대한에 대한 이런 구체적 해석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에 대한 선명한 이해를 획득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지에 대해 더 구체적 설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쉽게 풀이하면 이미지란 사물로 그려지는 대상 사물이어야 한다. 그것이 나무이건, 강이건, 사람이건 간에 1차적 경험함으로써 이 경험을 고리로 엮어내는 기능인 상상력을 동원, 언어로 재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미지는 체험의 산물이고, 체험을 성립시키는 대상 존재나 대상 사물에 의해 떠 올리는 상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관념으로 드러내는 것을 체험으로 드러낸다는 뜻이다.
체험이 주로 감각에 의존되고 보면 이 뜻은 관념을 사물로 드러낸다는 뜻이 된다.
일종의 관념의 물화이고, 관념의 대상화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이미지는 관념을 극복하기 위한 즉 19세기적 미학을 새로운 실념의 미학으로 대체 하고자 하는 시대적 요청이 있다고 할 수 있다. ㅡ 계속
...
 

이상의 선언을 종합했을 때 몇 가지 핵심적 주장에 접근할 수가 있다.
첫째, 언어의 축약 적이고도 함축적인 경영.
둘째, 과학적 논거나 칠학적 사유 그리고 관념어의 배제, 감각적 이미지의 동원을 통한 체험적 진술이다.

이 지적에서 언어의 축약 적이고 함축적 경영은 간결한 표현을 의미하기 보다는 의미의 함축성, 즉, 암시나 상징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의미로 전달하는 것은 대신 사물로 제시, 이미지를 성립시키게 하는 도 다른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과학적 논거나 철학적 사유 그리고 관념어의 배제는 바꾸어 보면 추상이나 관념, 사유나 사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체험의 중시는 견고하고 투명한 이미지의 시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 해 볼 수 있다.
이쯤에서 이해력이 빠른 독자는 이미지가 사물로 그린 언어의 회화라는 점에 쉽게 동의 할 것으로 본다. 이를 시로 실제화 해 보자.

(실제)
- 배경 설정

이미지를 중시하는 모더니즘 시를 흔히 의도적 제작이니, 기획된 제작이니, 심하면 현대적 기획이라고까지 한다.
이 말은 의도적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이를 결합시켜 한 편의 시를 성립시킨다는 뜻과도 통한다.

이런 사전 전제는 시의 실제, 즉, 이미지를 시의 표현 본질로 하고자 했을 때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것은 흔히 시를 쓰고자 하는 분들이 시상이나 관념의 표출을 중시하고자 하거나 정서적 환기를 시로 표출하고자 하는 기존의 미학적 발상에서 시를 출발시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때 시를 쓰고자 하는 분은 스스로가 품은 생각이나 느낌에 만족 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를 의도적 제작으로 사물화 하고자 하거나 이미지화 하고자 했을 때는 경우가 사뭇 달라진다. 
그것은 생각이나 느낌을 형태. 빛깔. 향기. 맛. 소리 등으로 나타내야 하는 곧 관념이나 의식 그리고 의미를 모습을 갖춘 사물로 형상화 하고자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움을 겪고 그 때문에 몹시 난감 해 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생각을 형태로 바꿔야 한다는 초보단계에서 당혹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더구나 이런 기법에 길들여지지 못한 습작기에는 아예 재주가 없는 것으로 낙담하기도 한다.
이를 시로 실제화 해 보자. ㅡ 계속

...
 

우선, 지난여름 바다에 다녀온 기억이 되살아나 한 편의 시로 쓰고 싶어졌다고 치자.
이때 떠오르는 바다의 이미지는 파도, 갈매기, 통통배, 짠 소금기, 모래사잔 등 실로 시각적이고도 청각적이며 미각적인 이미지들이 금방 동원 될 것이다.
그래서 이런 감각적 체험을 동원, 이미지화하고 싶은 욕심은 앞서나 뜻대로 이미지가 만들어지지 않아 고심 끝에 이렇게 썼다고 치자.

『파도는 성낸 고래같이
흰 이빨을 드러낸 채 
달려들고

놀란 갈매기는 
끼르륵 끼르륵
겁에 질린 울음을 토해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통통배는
포구로 돌아왔다 떠나고

백사장은 
고래 밥이 된 채 굽은 등을
오므렸다 폈다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잘된 시는 아니지만 형상화 한 노력은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1연에서 파도를 성낸 고래 등과 성난 고래 이빨로 사물화하고 있고,
2연에서는 무심코 운 갈매기 울음을 마치 밀고 들어오는 고래의 위협에 놀라 토해내는 울음으로 1연에 연계, 구체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3 연에서는 통통배 한척을 동원, 바다의 현장성을 가시화하고,
종연에서는 굽은 해안선을 마치 등을 구부린 허리로 의인화, 고래가 잡아먹는 것으로 변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접에서 이 시는 아마추어 수준에서 노리는 이미지화에 다소 접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1연의 파도의 이미지를 고래에 접근시킨 점은 이미 다른 시인에 의해 시도 되었고, 
2연은 청각적 이미지라기보다는 사실을 다소 다른 해석으로 치환해 내는데 그친 이미지의 미숙함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가 하면 3연에서는 현장성을 구체화하는 가시력을 돕고는 있으나 파도의 이미지에 연계되는 구상성에서 이탈하고 있고, 종연에서는 다소 신선한 이미지로 해석할 수 있으나 이 또한 다른 시인에 의해 바다의 이미지로 사용한 적이 있어 설득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는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 즉 새로운 체험이 없었기 때문에 기존의 체험에만 의존 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ㅡ 계속
...

2. 시각적 이미지

시에 있어서 관념시는 의미나 정서의 전달을 중시하는데 반해 이미지는 일종의 보여주는 시, 즉 관념이나 정서를 사물로 바꿔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시각적 이미지는 이미지를 성립 시키고 제시 하는데 있어 그 대표적인 것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시를 마음으로 그린 그림. 사물로 그린 그림 혹은 언어의 회화라고 하는 것도 다 시각적 이미지를 중시하는데서 붙여진 해석들이다.
의미의 전달을 통한 감동에 대해 이 감동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그림으로 그려 달라는 주문이 이미지 시학이다. 
회화가 선과 색의 조화라면 이때 시는 언어가 매체이고, 그 때문에 언어로 구상하고 채색하며 조화를 창출하는 언어의 회화가 된다.

문제는 언어로 그린 그림을 성립시키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언어 이전의 매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로 그린 그림이란 이 매체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역할 이상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매체가 무엇인가, 그것이 곧 이미지다.

우리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보았다고 하자, 1차적으로 일으키는 것이 정서의 환기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 아름답다는 생각과 느낌은 서서히 소멸해 버리고 아름답다는 느낌 대신 아름다운 꽃의 느낌만 떠오르게 된다.

이는 아름다운 꽃의 형상이 시각적 체험을 통해 우리의 뇌리나 의식 속에 지워지지 않고 형상으로 인화 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 시각적 체험이라 하는데, 이때 지워지지 않는 꽃의 모습이 곧 이미지다. 
그래서 잊혀 지지 않는 꽃에 대한 감동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지만, 이 지워지지 않는 이미지를 재생함으로써 꽃의 모습은 물론 그때의 감동까지도 환기시켜 볼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이미지는 단순한 기억의 재현이 아니라 그때의 감동까지를 재생시켜 준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억의 재현과는 다르게 된다.

현대에 있어서 시인이 자기의 주요한 목적 그리고 시의 가장 특징적인 것으로 새로이 기도하고 있는 것을 새롭게 솟아나온 이미지라고 생각했던 콜리지의 견해도 바로 시의 회화나 사물로 그린 그림을 강조했던 것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ㅡ 계속

...
 

이와 같이 현대시는 전달이 아닌 구체적 드러냄을 그 본질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무엇인가를 들어내기 위해서는 체험을 통한 새겨진 상으로 드러내야 하는데, 그 상을 보존 유지 하는 것이 이미지다. 
더구나 우리들의 지각활동 중 가장 많은 부분이 시각에 의존되고 있고 보면 시각적 이미지는 그 무엇인가를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기능을 맡고 있는 것이 된다.

그 때문에 시각적 이미지는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유리하고도 대표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현대시가 사물만이 아니라 의식이나 감정, 나아가서는 심리적 작용 까지도 모습으로 드러내기를 희망하고 있고 보면 시각적 이미지는 대표적 이미지의 자리에 놓이게 된다.
이쯤에서 시각적 이미지를 시의 실제에 적용해 보자.

[실제]
- 배경설정

농사철 무렵 시골에 볼일이 있어 하행 열차를 탔다고 치자.
차 창 밖으로 들녘의 하늘이 가득히 펼쳐질 것이다. 
소를 몰아 쓰레질을 하는 광경, 일렬로 허리 굽혀 모를 심는 모습,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뒤뚱 거리며 논둑을 바삐 가고 있는 아낙의 모습이 들어올 것이고, 
그 배경으로 펼쳐진 도열한 포플러가 마을로 접어들수록 난쟁이 키를 하고 있는 원경도, 
삐삐 꽃이 하얗게 핀 둑에 방목돼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황소와 염소의 모습이 눈에 뛸 것이다.
달리는 기차에서 순간적으로 포착된 이러한 풍경은 산허리를 돌면서 뒤에 남겨지게 되고, 한가롭고 느긋한 평온 감 같은 느낌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눈으로 체험했던 정경들만 선하게 떠오를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남아있게 되고, 이를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이때 초보자들은 들녘에서 느낀 감동이나, 눈에 비친 정경을 시의 대상으로 설정, 형상화하고자 할 것이 뻔하다.
달리 말하면 보고 느낀 대로 쓰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할 것이란 뜻이다. ㅡ계속

...

차창 넘어 
굽은 신작로를 돌아
포플러는 마을로 들어서고

하얗게 삐삐 꽃이 핀 
둑길에는
늙은 황소 한 마리와

턱수염이 긴
검은 염소 몇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엉덩이를 흔들며
광주리를 인 여인네가
논두렁을 뒤뚱이며 걸어가고

들녘엔 
일제히 구부린 허리들이
모를 심고 있었다.

이렇게 썼다고 치자. 물론 아마추어 솜씨지만 한가한 농촌의 풍경이 비교적 장 담겨 있고 또 시각적으로 포착한 정경들이 서경적으로 잘 펼쳐져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시는 본 그대로 드러내는 데는 별 무리가 없었으나 새로운 해석을 곁들여 드러내주고 있는 점은 전혀 없다.
그래서 시각으로 체험한 들녘을 있는 그대로, 본 그대로 해석한 것 이상을 보여 주지는 못 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언어로 그려진 그림 이상은 아니란 뜻이다.
시가 언어로 그려진 그림이란 점에서 보면 물론 이 시도 그림으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시일 수 있다. 
그러나 새롭게 솟아나온 이미지, 참신하고 풍부한 이미지가 동원되지 못 했다는 점에서는 단순한 서경으로서의 그림을 대비했을 때 독자들은 시각적 이미지에 대한 이해를 극명히 할 것으로 본다. ㅡ계속

...

둑길엔 
하얗게 삐삐꽃이 
피어 있었다.

꽃밭엔 
주인 없는 자전거가 한 대 
서 있었다.

왕방울 눈을 굴리며
암소 한 마리가
주인대신 자전거를 지키고 있었다.

제 또래의
검정 염소들이
삐삐꽃이 흰머리를 흔들 때마다
늙고 검은 턱 수염을 흔들었다.

들녘엔 한결같이
구부러진 허리들이
가을을 심고

졸시 「이앙기」의 전문이다. 이 시는 앞의 시와 배경이 같고 또 발상 기저도 동일하다.
다만, 같은 대상이나 배경을 두고 그 표현이 다를 뿐이다.

앞의 시에서는 시의 구도가 원경과 군경으로 포착 되면서 차창에 비친 들 전체를 대상으로 했다면 뒤의 시는 근경만을 포착,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앞의 시가 주로 시각에 비친 서경적 구성이었다면, 뒤의 시는 시각에 비친 들녘을 직관적 언어의정수를 가미, 새롭게 해석 하고자 한 상상력을 동원, 이미지로 결구시키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특히 뒤의 시에서는 둑길에 핀 삐삐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놓고 거기에 배치한 암소와 자전거라는 전혀 무관한 상관물을 병치시키고 있다. 
이 무관한 관계를 유기적 관계로 전환시키기 위해암소의 특징인 왕 부리 눈을 강조하고 주인 없는 자전거를 지키게 하는 상관관계로 이동시킴으로써 치환을 성립 시키고 있다. 
그런가 하면 4연에서는 하얀 삐삐꽃과 검은 턱 수염의 염소를 배치시켜 의미 아닌 사물의 대비로 병치 시키고, 종연에서는 구부러진 허리들이 모를 심는 것이 아니라 일제히 가을을 심고 있다고 도착시킴으로써 당혹감을 갖게 하는 아이러니를 구사하고 있다.
이 점에서 앞의 시는 감각적 체험의 재구성을 통한 치환과 병치의 은유적 기법을 가미함으로 써 상상력에 호소하는 그림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루이스가 시적 이미지를 문맥 속에서 인간의 정서를 저류로 가진, 어느 정도 은유적인 언어를 사용한 다소의 감각적인 회화라고 한 이미지에 대한 피력을 음미해 볼 만하다.

다시 “감각적인 이미지”로 나아가 보자. ㅡ계속

...
 

3. 감각적 이미지

감각적 이미지를 복합적 감각으로 드러내는 것이 감각적 이미지다.
감각적 이미지란 청각적 이미지는 물론 미각적 이미지, 후각적 이미지, 근육 감각적 이미지, 역학적 이미지 그리고 색채 적 이미지와 같은 여러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연계되고 하나로 섞여져 동시적 효과를 드러내는 이미지다.

C.D. 루이스가 시를 공감적 체험의 재생이라고 말한 것이나 최창호가 시의 전체적인 내용과 정서는 각개의 이미지들의 유기적인 결합에 의해서 형성되는 전체적인 이미지를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는 것으로 피력한 것은 각기 표현은 다르지만 공감각적 이미지를 두고 하는 말일 듯싶다.

시를 단순한 회화라 하지 않고 감각적인 회화라 하는 것이나, 감각체험의 재현이라고 하는 것은 현대시가 이미지에 의존하면서도 특히 공감각적 이미지에 의해 창출, 형성된다는 뜻으로 해석하게 하는 지적들이다.

르네 웰렉과 워렌이 그들의 공저인 「문학의 이론」에서 지적인 이미지라고 하는 말은 반드시 시각적일 필요는 없고 과거 감각상의, 혹은 지각상의 체험을 지적으로 재생한 것이다.
즉 기억을 뜻한다고 피력한 것은 감각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듯싶다.
그것은 반드시 시각적일 필요는 없다는 부분에서 잘 말해 주고 있다. 또 브룩스와 워렌은 시에 있어서 어떤 감각 체험의 재현을 이미저리라고 부른다.

이미저리는 단순한 마음의 그림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감각의 어떤 것에 호소한다는 지적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지는 단순한 그림이 아닌 감각적 체험을 통한 감각적 호소에 연계시키고 있다.
이 말도 감각적인 이미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단순 이미지에 대응시킨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시각적 이미지 쪽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따지고 보면 시각적 이미지도 감각적 이미지의 범주에 편입시킬 수 있다.
어떻든 감각적 이미지의 개념은 설정됐다고 보고 감각적 이미지란 무엇인가라는 정의를 내려 보기로 한다. ㅡ계속

...
 

감각적 이미지는 우리 신체 구조상 외부의 사물에 대한 체험을 통해 일으키는 직감적 반응. 즉 시각, 청각, 촉각, 후각감각, 미각, 근육 감각, 기관과 같은 감각 기관을 통하여 지각될 수 있는 사물이거나 사물을 통해 상상적으로 끌어들여 드러낼 수 있는 사물의 상을 말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시각적 이미지는 사물의 형태, 빛깔, 대소, 동태와 정태 등을, 언어를 빌어 회화화한 것이다.
청각적 이미지는 사물의 냄새를.
촉각적 이미지는 사물이 피부에 와 닿는 때의 감각적 느낌을. 
기관 감각 이미지는 우리의 운동, 생식, 호흡, 소화, 영양기관 등에서 나타나는 호흡, 맥박, 고동, 소화 등의 감각을.
그리고 근육감각 이미지는 근육의 수축이나 긴장 등에 따르는 변화 등이 내적 자극에 생기는 감각을 언어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감각적 이미지는 모든 감각 기능으로 체험한 사물의 상을 언어를 빌어 나타내는 것으로서 이 때문에 이미지는 언어로 그린 그림이 되는 것이다.
이쯤에서 감각적 이미지를 시로 구체화해 보자.

[실재]
- 배경설정

봄낭 울타리에 노랗게 핀 개나리가 도열해 있고, 밭이랑에서는 비비 베베 종달새가 울고 있었다고 치자.
나무마다 파릇파릇 싹이 돋아 눈앞에 보이던 까치집이 멀리 보이고 이름 모를 새들이 한 나절을 비비비 울고 있었다고 치자.
그리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실개천이 녹아 흐르면서 또르륵 또르륵 간헐적인 물소리를 내고 있었다고 치자.
이러한 배경은 봄날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고 또 우리는 이런 풍경 앞에서 본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
더구나 한나절이 기울면서 이런 분위기는 한가로움을 더해주고 이 한가로움을 벗 하면서 봄의 흥취에 자극된 우리의 정서들은 다투어 반응하게 마련이다.
이때 문득 시흥이나 시의 착상이 떠올랐다고 치자.

그래서 다음과 같은 한 편의 시를 썼다고 하자. ㅡ계속

...
 

노란 개나리꽃으로
울타리를 친 봄이
동네를 다시 포위하고 있었다.

종다리는 하늘높이 매달려
비비 꼬르르
아지랑이를 비비 꼬아 올리고 있었다

갓 나온 나무 잎새들이
까치집 입구를 막아 시야에서 지워 버렸다

비비새 몇 마리가
한나절을 울음으로 굴리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실개천이
도란도란 속삭이며 흐르고 있었다.

초보자의 시 치고는 제법 맑은 시각을 동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울타리 가에 개나리가 피어있는 것을 봄이 울타리를 치고 마을을 포위한 것으로 변용한 것이나, 종달새의 울음소리를 빌어 비비 아지랑이를 꼬아 올린다고 본 시각적 해석. 
그리고 새 잎이 돋아나 까치집을 가리고 있는 것을 까치집 입구를 막았다고 본 시각이나, 
비비새 울음을 빌어 한나절을 굴리고 있다고 청각을 시각으로 이동시킨 솜씨가 제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끝 연의 시냇물 소리를 도란도란 속삭이는 것으로 청각적 언어로 포착한 것도 예외는 아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화자는 봄의 시각적 이미지와 정경을 주로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로 동원, 구체화 하고 있다.
청각적 이미지를 시각적 이미지로 변용하는 솜씨가 돋보이는 시다.
그래서 시각과 청각의 동원은 감각적 이미지를 빌어 시를 썼다는 점에서 감각적 이미지의 시로 해석할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시각과 청각, 근육감각, 기관 감각을 동원한 공감각적 이미지의 시를 비교시켰을 때 독자들은 감각적 이미지의 실제에 접근 할 것으로 본다. ㅡ계속

...
 

봄을 타종하던
노란 종소리가
개나리 울타리를 흔들고 있다

비비 꼬아 올린
아지랑이 끝에
종다리는 목을 매달고 있다

까치집도
날개가 돋아났는지
한사코
시계 밖으로 물러섰다

노곤한 한나절이
비비새 울음을 베고 누워
곤히 잠들고

겨우내 체했던
낮은 개울이
연거푸
토악질을 해댔다

졸시 「봄」의 전문이다. 이 시는 앞의 시가 시각과 청각적 이미지에 의존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시각, 청각, 근육, 감각, 기관감각과 같은 보다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를 동원하고 있다.

첫 연에서 봄을 타종한 노란 종소리는 기실 개나리꽃의 형상이 마치 종과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고 또 봄의 첫 소식을 알리는 것이 개나리꽃이기 때문에 꽃의 형상을 빌어 시각적 이미지를 청각적 이미지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 된다.
2연에서는 종다리가 높이 떠 우짖는 것을 마치 아지랑이가 꼬아 올린 새끼줄이나 노끈에 목을 매달고 있는 것으로 환기시키고, 
3연에서는 새파란 나뭇잎이 돋아나 까치집을 가려버린 것을 마치 까치집에 날개가 돋아 멀리 날아간 것으로 근육 감각 화 하고,
4연에서는 봄볕이 노곤히 풀린 한낮의 봄을 비비새 울음을 베고 누운 것으로 엮시 근육 감각으로 병치 시키고 있다. 
그리고 끝으로 종연에서는 꽁꽁 얼어붙었던 개울이 봄이 되자 풀리면서 도랑도랑 흐르고 있는 것을 겨우내 체했다 토해내는 토악질로 기관 감각의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뒤의 시는 여러 감각적 이미지를 동원, 공감각으로 형상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고 그 때문에 앞의 시 보다 구상화된 것은 물론 앞의 시에서 느낀 단조로움을 극복해 줄 수 있는 결 구력까지 읽을 수 있게 한다. 
곧 감각 상호간의 호소력을 획득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감각적 이미지가 무엇이고 어떻게 시에 실제화 하는가를 익혔을 것으로 본다. 
다음은 절대 심상으로 넘어가 보자 ㅡ계속

...

4. 절대 심상

시각적 이미지나 감각적 이미지가 객관적 삼ㄹ애서 체험함 감각 체험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새로운 정서를 환기사키고 동시에 주관적 해석까지도 객관화 시킴으로써 시를 회화하는데 이바지하고 있음을 보나왔다.
동시에 내면적 의식이나 심리까지도 사물화 함으로써 구체적 이미지로 제시하는 그림과도 만나보았다.

이와는 반대로 그것이 시작이든 공감적이든 관념이나 의식의 형상화라는 이미지를 깡그리 거부하고 이미지 자체를 무의미한 기호로 제시하거나 이것을 서로 대립적으로 병치시켜 휴희화 하며 그 분위기를 읽게 하는 사물시의 경향도 있다.
김춘수의 지적에 따르면 사물을 감각적으로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은 원시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관념(의미)이전의 관념이 장차 거기서 태어날 관념의 제로 지대이기도 하다.
이 지대에서 이야기되는 사건들은 질서가 엇ㅂ는 듯하지만, 그것은 관념의 쩍에서 바라볼 때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고 「존재 감각과 의미의 시」에서 말하고 있다.

이 말은 관념, 즉 의미가 배제된 순수한 사물의 이미지인 관념의 제로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원래 관념이란 의미론적 해석이다.
그리고 이 관념을 드러내는 언어는 그래서 의미의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언어에서 의미를 배제해버린 사물 자체만 남게 되는 일종의 환원주의가 성립 된다.
우리가 한 사물을 해석 하고자 했을 때 저 나무는 어느 과에 속하고 어떤 용도로 쓰이며 어떤 꽃과 열매를 맺고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는 가 등의 의미로 해석 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의미에 의해 해석 된 고정화된 관념을 적용 시킨다.

그러나 한 그루 나무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해방시켰을 때 비로소 자유로운 나무의 본래의 것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고 이때 관념의 제로지대에 서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관념 이전의 사물 세계 혹은 사물 자체로 환원 시켰을 때 비로소 순수에 이르게 되고, 이 순수의 이미지를 동원했을 때 절대 심상에 이르게 된다.

다시 김춘수의 이론을 빌어보자.
집이면 집, 나무면 나무를 대상으로 좌우의 배경을 취사선택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상의 어느 부분을 버리고 다른 어느 부분은 과장한다. 대상과 배경과의 위치를 실지와는 다르게 배치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실지의 풍경과는 다르게 배치한다는 뜻이다. 논리와 자유 연상이 더욱 날카롭게 개입하게 되면 대상의 행태는 부서져 마침내 대상마저 소멸된다. 
무의미의 시가 이렇게 탄생한다고 김춘수는 의미에서 무의미까지에서 피력하고 있다.
그래서 무의미시는 절대 심상을 동원한 일종의 언어유희가 되고, 그 때문에 언어의 의미성이나 감각성을 모두 배제한 언어의 기호화나 사물화와 같은 전위적 실험 성까지 수반하게 된다.

이상의 설명을 통해 절재 심상이 무엇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은 설정됐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이를 시로 실제화 해 보자. ㅡ계속

...
 

[실 제]

- 배경설정

한 여름, 한 점 바람도 까딱 않는다.
축축이 젖는 등골 사이로 연신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대체로 짜증을 내게 마련이다.
‘어휴 덥다. 이 놈의 바람들은 다 어디로 갔담.’
하면서 부채질을 하거나 옷섶을 흔들어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바람이 마주한 산에 숨어 있는지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는 기미가 보인다. 
그런가 하면 뻐꾸기도 지쳐 늘어졌는지 울음소리의 꼬리가 사뭇 더 길어진다.
‘뻐꾹’이 아니라 ‘삐어어꾹’이다.

이럴 때 우리는 이놈의 바람이 어디로 숨어 버렸나 한다든지. 
오다가 뒈져 버렸나 하면서 공연한 짜증을 토해내게 마련이다. 
하는 수 없이 멱을 감는다든지 한 바탕 세수로 더위를 몰아낸 뒤 정신을 차려본다.
이때 산들 바람이 스쳐 지나면서 물기를 식혀주고 멀리서 뻐어꾹 하고 뻐꾸기 울음이 따라온다.
제법 여름의 풋내 나는 흥취가 있고, 늘어진 한가로움이 있고, 닦아낼 수 없는 고적감이 있다.

이럴 때 파한으로 잡은 것이 펜이고, 이 펜을 움직여 여름 한때를 소묘하는 한 편의 시를 썼다고 치자.

바람이 길을 잃었나
하긴
꼬불꼬불한 시골 길을
제대로 찾아올 리 없지.

아냐
저 칼날 세운 억새풀이
막고 선 언덕길을 넘다
목이 자려 나갔을 거야.
살아남은 놈들은 
숲으로 삼십육계
도망을 쳐버린 게야.

모르는 소리
알몸으로 지나가기가 부끄러워
어둠을 기다릴 거야
너무 대낮은 밝아

뻐꾸기가 뻐어꾹
바람의 꼬리를 물고
놓아주지 않을 거야. ㅡ계속

...
 

이렇게 써 놓고 보면 불어오지 않는 바람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가지다. 
1연에서 시골 고부란 길을 찾지 못해 길을 잃었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고,
2연에서는 무성한 잎으로 도열해 선 칼날 같은 억새풀 숲을 빠져나오다 목이 잘려버렸기 때문에 올 수 없는 것으로,
3연에서는 살아남은 바람마저 숲 속으로 도망쳐 버렸기 때문에 불어오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고,
4연에서는 걸친 것 없는 알몸을 드러내기 부끄러워 몸을 숨긴 것을 대 낮이 너무 밝기 때문으로 해석 하는가 하면,
종연에서는 바람의 꼬리를 뻐꾸기가 물고 늘어지면서 놓아주지 않기 때문에 바람이 올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하여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이유를 여러 경로로 설정하고 있다.

아마추어 솜씨치고는 제법 근사하고 퍽 풍풍한 상상력을 동원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기실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것은 자연 현상으로서 여름에는 바람의 기류가 형성되지 않고 또 형성된다 해도 빈약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평범한 사실을 여러 이유나 원인을 제시한 상상력으로 동원, 제법 원인이나 이유의 의미를 성립 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때 성립된 이유나 원인이 시실을 근거로 한 실증적이고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전부의미가 비 사실 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유희적이다.
그것은 바람이 관념이나 시실, 논리로 해석하고자 한 의미로부터 일탈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미로부터 도피이거나 의미의 배제란 뜻이다.

부득이 의미론적 해석을 버렸을 때 언어는 회화한 사물 유희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바람의 의미나 바람의 해석은 관념이나 논리에서 해방됨으로써 자유로워지는 바람 자체를 획득하는 것이다. ㅡ계속
...

여기에 다른 한 편의 시를 동원 했을 때 이 점 훨씬 극명해 질 것으로 본다.

억새풀에 목이 잘린 채
나자빠져 있었다.

풍선처럼 부풀었던
복부가 터진 채
엎어져 있었다.

요행히
목숨을 불어넣은 무리들은
산발로 비틀 거리며
숲을 헤매고 있었다.

포복으로 들녘을 빠져 나가기엔
대낮은
너무 환했다.

패주 뒤의 정적
소람거리는 나무들이
기습을 예비하는 바람의 음모를
수화 신호로 보내오고 있었다.

말갈기를 세워
질주하던 기마 전술의 게릴라들은
지금은 은신 중이다.

일진의 내습을 기다리는 동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뻐꾸기만 울고 있었다.

이 시는 졸작 「바람」이란 시의 전문이다.

앞의 시와 발상∙분위기∙배경이 흡사하고 소재 자체도 거의 동일하다.
다만, 뒤의 시가 바람을 게릴라로 보아 지금은 은신 중이기 때문에 몰려오지 않는 것으로 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앞의 시와 뒤의 시는 사뭇 바람에 대한 해석과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원인이나 이유에 대한 진술을 각기 달리하고 있다. ㅡ계속

...
 

앞의 시 1연이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이유를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찾아오다 길을 잃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는 것에 비해 뒤의 시 1연에서는 숲을 헤켜 나오다 억새풀에 목이 잘렸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또 앞의 시2연에서는 역시 뒤의 시 1연의 이유를 거의 같은 발상으로 하고 있다.
뒤의 시 2연은 풍선처럼 부푼 바람이 복부가 터진 채 엎어져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앞의 시 3연은 요행히 목숨을 부지한 바람이 숲 속으로 줄행랑을 쳤기 때문으로 보고 있고,

뒤의 시 3연은 이를 다소 구체화, 살아 돌아간 바람을 머리를 풀고 비틀거리며 숲을 헤매는 상처 입은 바람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앞의 시 4연이 바람이 알몸을 하고 있어 하도 낮이 밝아 지나갈 수 없는 것으로 본 것에 비해 뒤의 시는 숨어서 지나가기에는 한낮이 너무 밝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끝으로 앞의 시 종연이 마치 뻐꾸기가 바람의 꼬리를 물고 필사적으로 놓아주지 않기 때문에 불어오지 못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반해 뒤의 시 5연은 바람을 패잔병으로 보고, 이 패잔병이 다시 기습의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을 알려주는 나무 수화신호로 보고 있고, 이어 6연에서는 기습을 예비하는 게릴라로 보고 있다.

앞의 시에서 뻐꾸기가 바람의 꼬리를 물고 있는 것과는 달리, 뒤의 시 종연은 게릴라의 내습이라는 긴박한 상황에 아랑곳없이 그저 무심히 뻐꾸기가 울고 있는 것으로 각기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이러한 두 시의 해석상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두 시가 드러내고 있는 바람의 이미지가 예외 엇ㅂ이 상상력에 의탁되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달리 말하면 바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림으로써 바람의 해석을 넘어선, 순수 사물만이 유희 화 되고 있다는 점에 관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관념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비로소 사물 자체로 환원되고, 환원된 시물의 이미지를 동원했을 때 기존의 해석을 넘어서는 절대 심상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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